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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0 황혼이혼을 피하는 비법 20가지

누구나 영화같은 삶을 산다

《책 소개》 엉겁결에 결혼했습니다. 어머니 성화를 이겨내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마흔한 살에 저를 낳으셨습니다. 당시 마흔한 살에 출산하는 건 보기 드문 노산이었습니다. 자식 여섯 중 막내인 저를 장가보내야만 임무를 완수하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며느리 심사기준은 까다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손쉽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선생님이면 오케이였습니다. 초등, 중등 가리지 않고 과목도 상관없었습니다. 하지만, 교사라야 했습니다. 마침, 큰 누나는 교대를 나온 선생님 출신이었습니다. 큰 누나는 한 달에 두 번씩 맞선을 보게 했습니다. 2주마다 서울에서 청주에 내려가 선을 보는 게 다반사였고 스무 번이나 보았습니다. 첫 번째 선본 여성을 제 발로 찼습니다. 그 후..
《책 소개》

엉겁결에 결혼했습니다. 어머니 성화를 이겨내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마흔한 살에 저를 낳으셨습니다. 당시 마흔한 살에 출산하는 건 보기 드문 노산이었습니다. 자식 여섯 중 막내인 저를 장가보내야만 임무를 완수하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며느리 심사기준은 까다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손쉽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선생님이면 오케이였습니다. 초등, 중등 가리지 않고 과목도 상관없었습니다. 하지만, 교사라야 했습니다. 마침, 큰 누나는 교대를 나온 선생님 출신이었습니다.
큰 누나는 한 달에 두 번씩 맞선을 보게 했습니다. 2주마다 서울에서 청주에 내려가 선을 보는 게 다반사였고 스무 번이나 보았습니다. 첫 번째 선본 여성을 제 발로 찼습니다. 그 후, 여러 번을 거듭 보아도 첫 여성보다 나은 여자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슬슬 지쳐갈 때쯤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이쯤에서 선보기를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아내가 제 짝이 되었습니다.

본사에서 8년, 지방에서 6년간 회사생활을 했습니다. 원주에서 근무하던 2000년, 아내는 다시 임용고사를 치르고 학교에 발령받았습니다. 아이들 양육을 위해 그만두었다가 다시 시험을 치른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제주도 사람입니다. 고등학교까지 서귀포에 살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육지로 나와 살았습니다. 제주도는 여자의 입김이 셉니다. 아직도 남편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집이 많습니다. 과거, 여자들이 물질해서 소라, 전복 따 돈을 벌고, 남자들은 집에서 애를 보던 풍습에서 기인했다고 합니다. 아내도 제주 여자답게 보통이 넘습니다. 30년 살아보았지만, 아내를 이겨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군림하는 데 집에 오면 끽소리 못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아내는 과묵합니다. 진중한 성격에 차분합니다. 무슨 일이든 느긋한 편이지만 저는 정반대입니다. 다혈질에 조급하고 화를 잘 냅니다. 짜증도 많고 남을 탓하기 일쑤입니다. 직원들에게 업무지시를 하고는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을 냅니다. 직원들은 제가 지시한 일부터 먼저 처리하고 다른 일을 할 정도입니다.

말은 중요합니다. 오죽하면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겠습니까? 말 때문에 낭패 본 기억이 많습니다. 사업에서 말 때문에 손해 본 게 다반사이고 아내와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입만 조심해도 삶이 바뀔 거를 알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저는 직선적인 말투의 돌 직구 스타일입니다. 아내는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할 말은 하는 타입입니다. 이것도 반대라서 살면서 부딪침이 많았습니다.

50살이 넘어가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내는 10년 넘게 요가를 하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서울이든 전국 어디라도 공부하러 다닙니다. 명상, 자기계발, 상담, 부동산 학원 등 열심히 삽니다. 올해 1월, 이사하기 전까지 전원주택에서 아내 혼자 농사를 지었습니다. 저는 농사일을 거들지 않았습니다. 저도 명상과 부동산공부를 하지만 동일한 선생, 같은 학원이라도 웬만해선 같이 다니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서로 부대끼지 않으며 따로 삶을 일구어 나가는데 익숙한 편이었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 순간을 참지 못하고 순식간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삼초 아니 일초만 참아도 싸움이 나지 않을 겁니다. 타협과 원만한 합의점을 찾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입니다. 매번 같이 다니는 것은 아니니 실, 바늘보다는 열쇠와 자물쇠 관계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부부는 서로를 존중합니다. 따지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한 발씩 양보하고 살아보니 왜 진즉 이렇게 못했을까 후회가 됩니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싸웠습니다. 이혼의 고비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 고비는 넘었다지만 앞으로의 삶에서도 의견 마찰과 부부싸움이 왜 없겠습니까? 이 책을 통해 알콩달콩 까지는 아니더라도 원만한 부부관계를 이루어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부부의 경험과 지혜가 비슷한 문제에 부딪쳐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5070 모든 부부가 이혼하지 않는 그 날까지 여러분을 응원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작가 프로필》

14년간 외국계 보험사에서 근무했다.39살에 사표를 내고 단돈 50만원을 들여 보험법인대리점(GA)을 창업했다. 2015년, 뜻을 같이 하는 여러 회사와 합병해 중견기업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2019년, 매출4,000억 원, 보험설계사 8,000명, 임직원 700명의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사업부의 대표를 맡았다. 사업을 시작하고 10여 년의 호황을 겪으면서 무차입 경영을 견지했다. 2017년 이후 큰 사기를 당하고 코로나까지 겹쳐 6년간 불황의 터널을 건너오면서 레버리지 경영을 도입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제2의 도약을 위해 정진하고 있다. 한때 건설 회사를 인수하고 무역회사를 설립했으나 사업 부진으로 매각하거나 청산했다. 최근에는 1인 기업을 설립해 부동산 임대업, 부동산 개발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제 알코올중독과 헤어집니다. 2022, 청어출판사>
<부동산 투자의 내비게이터 2023, 매일경제신문사>
<이용기의 사장수업 2023, 매일경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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